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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무리 10호]] [최영희] 南道記行(남도기행) 2005-03-10 16:04:54  
  이름 : 도화제      조회: 5505    
대맥 최 영희

첫째 날
--- 출발 ----
대망의 남도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새벽 5시 반부터 애들을 닦달하며 깨우고 법석을 떨며 출발한 시
간이 6시 14분이다.
모처럼 다섯 식구가 함께 가는 여행길이라 기분이 더 좋다.
---여산 휴게소----
망향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는데 에어콘에서 더운 바람만
나온다.
남편이 에어콘을 켰다가 껐다가 별 짓을 다해도 시원하지가 않아
여산 휴게소로 들어갔다.
우리에게는 시원한데서 쉬고 있어라 하면서 휴게소 앞에서 내려
주고 혼자서 휴게소 옆 써비스 센타로 갔다.
식사하고 한 30분 정도 있으니까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냉
매를 너무 많이 넣어서 그랬다면서 이제는 에어콘으로 속썩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들어왔다.
혼자만 더운데서 고생한 것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변산 해수욕장----
오후 2시30분에 변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 질 무렵 채석강 낙조를 볼 목적이었으므로 시간이 남아 애들
에게 해수욕을 시킬 예정이었다.
요한이가 너무 좋아한다.
작년여름 방학 때 배운 수영솜씨 자랑하기가 바쁘다.
----채석강 에서----
오후6시에 채석강에 도착했다.
목적은 채석강에서 일몰의 낙조를 보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침 구
름이 서쪽 하늘에 너무 짖게 깔려 있어서 목적달성은 하지 못했
지만 채석강의 퇴적암단층은 정말 자연의 신비 바로 그것이었다.
낙조까지 보았더라면 금상첨화 였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떨어지
지 않는 발길을 돌려 영광으로 향했다.
밤10시10분경 영광시내로 들어와서 숙소를 잡아 1박을 했다.

둘째날
----강진,백련사----
우리의 여행목적이 강진, 해남, 송광사, 낙안읍성이기 때문에 서
둘러 출발했지만 이정표를 따라 백련사에 도착하니 10시였다. 백
련사 입구에서 백련사까지 예전에는 황토 길이었던 가보다. 유
흥종교수가 쓴 글에서 보면 예전 황토길이 더 운치가 있었는데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바람에 운치가 없어 졌다고 쓰고 있다.
백련사는 절의 규모도 적지만 아주 한적한 사찰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동백나무와 법정스님의 책에서 보고 어떻게 생
긴 나무일까? 항상 궁금해하던 후박나무가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어서 나그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입구까지는 자동차로 10분정도 거리였다.
올라가는 산길이 꽤 가파르고 길옆에는 울창한 대밭이 있어 낮인
데도 컴컴하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 18년 중에서 말년의 8년을
기거했던 곳으로 이름과 같이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나중에 기와
를 얹어 초당이란 말은 좀 어울리지 않았다.
조그마한 초당에서 18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명성을 기려 찾아
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던 곳이다.
다산은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생활에서 '목민심서' 외 500여권
의 책을 저술한 조선말기의 위대한 대 학자이다. 만일 다산이 유
배생활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벼슬길에 있었더라면 그와 같은 방
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당사자로서는 죽기
보다 괴로웠을 유배생활이었겠지만 하늘의 오묘한 섭리가 아니었
을까 생각하면 지나친 역설일까?
초당 옆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안내문을 보면 다산이 손수
파서 만든 연못이라 한다. 또 초당 뒤편 바위에 丁石 이라는 陰
刻으로 새겨진 글씨가 남아있다.
이 또한 다산이 유배생활 말년에 손수 새긴 것이라 하니 기약도
없는 유배생활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얼마였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
11시 35분 경 다산초당을 뒤로하고 땅끝(土末)을 찾아 길을 떠났
다.

----땅끝에서----
땅끝에 도착하니 오후 2시 55분이었다.
해발 2, 3백미터는 됨직한 전망대까지 더위에 지쳐 헉헉대며 올
라갔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인 다도해가 금방 올라오면서 느
낀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섬들을 품은 다도해는 역시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에서는 꼭 여행 스케치를 만들자고 남편은 열심히 디지
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나는 메모를 했다.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비탈길을 조금 내려가니 우뚝 선 토말비가
여기가 땅끝 임을 알려준다.
이 비석은 1981년 3월3일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가 북위 34도 17분 38초가 되는 곳으로 우리나라 육지의 최
남단 일명 땅끝이다.
꽤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듯 싶다.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한데 어울러져 시끌벅적한 시골장터 같
다.
오늘 숙박은 보성에서 하기로 했다.


셋째날
----송광사----
어제저녁에 내린 소나기로 하늘은 한층 더 맑게 푸르고 잘 포장
된 국도의 가로수는 특이하게도 모두 노간주 나무였다.
아름드리 노간주 나무의 끝도 없는 터널은 우리를 흠뻑 취하게
한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그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
했다.
우리의 여행길에 송광사를 굳이 넣은 이유는 남편이 국악작곡가
인 김 영동씨가 송광사에서 4물(법고,범종,목어,운판)의 소리를
녹음한 CD를 듣고 연주 모습과 소리를 실제현장에서 듣고 싶어했
기 때문이다.
4물 중 법고는 큰북으로서 축생의 진화를 돕는 목적으로 두드리
고 범종의 타종은 모든 중생들의 極樂往生을 돕기 위함이고 목어
는 물고기를 위한 것이며 운판은 날짐승들의 진화를 돕기 위한
자비심에서 연주되는 것이란다.
그러나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4물 전부를 연주하는 때는 새벽 예
불과 저녁 예불 시간 뿐 낮 12시에는 범종만 타종한다는 것이었
다.

실망은 컷지만 사전지식에 어두웠던 불찰로 돌리고 12시에 범종
소리 듣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12시까지는 시간이 있어 경내를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송광사의 4대 奇物 중 하나인 싸리나무로 된 큰 함지는 참으로
不可思議 했다.
태풍에 넘어진 큰 싸리나무를 베어 속을 파내고 큰 함지와 같이
만든 것인데 예전에는 쌀7가마분의 밥을 담아 절의 큰 행사때 사
용했다고 한다.
언 듯 보기에도 길이는 10미터가 넘고 직경은 2미터가 넘어 보였
다.
이윽고 12시가 되어 한 스님이 종각위로 올라가 범종을 타종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들으니 그 소리의 울림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종루밑을 자세히 보니 종 바로 밑에 큰 구멍이 파진 돌이 있어
종소리의 여음이 그 돌의 구멍에서 공명하여 여음의 길이가 길게
울려 퍼지게 되어 있었다.
아쉽지만 타종이 끝나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낙안 읍성을 향해
떠났다.

----낙안읍성 및 낙안민속마을----
오후1시경에 낙안읍성에 도착했다.
낙안읍성은 현존하고 있는 읍성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상
태가 양호하며 거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문화재이다.
읍성의 길이는 약1.4 킬로미터이며 낙안 민속마을의 특징은 용인
에 있는 민속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데 비해 옛 가옥 그대로
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점과 실제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는 데서
그 특징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주민들의 가옥은 대분분이 초가이며 이조시대 가옥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
각을 하게 했다.
오후2시 반 경 우리는 낙안읍성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
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짧은 휴가 기간과 모든 식구가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맞추다
보니 너무 시간에 쫓겨 좀 더 여유있는 여행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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