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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화로운 사람들
  [[갈무리 10호]] [이정철 수자] 화장실 2005-03-10 16:05:23  
  이름 : 도화제      조회: 5964    
이정철 수자



새벽 공기는 내겐 무거움이다.

도장문을 열고 수련지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약간의 버거움이다.
그러나 가끔 새벽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그날 하루
의 바로미터가 되곤 한다. 손털기 내내 나는 내부의 치열함으로
얼굴이 쌀처럼 하얗게 떠버렸다. 고요함으로 장부를 다스리는 나
에게 마지막 뜀뛰기는 큰 산처럼 느껴졌다.

행공 2번이 되자 미련 없이 그곳으로 갔다. 6시 30분 전후의 화
장실은 나만의 독방이었다. 약간의 어두움은 여유로움을 더해 주
었다. 그래서 문을 안에서 잠그는 것도 잊고서 고난을 겪은 후의
방만한 자유를 즐겼다. 잠깐 눈을 감고 뜨는 그 짧은 찰나의 시
간 일이 벌어졌다. 바깥쪽 회색철문은 그 순간 소리 없이 다리를
벌였고 그놈이 내방을 거칠게 열어 재꼈다.

몸이 움찔하면서 나의 모든 것은 끝났지만 당혹스러웠다.
고 1정도 돼 보이는 사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젊음은 늘 그렇게
급했다. 그것은 경고 없이 심장에 총을 겨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 거기에다 간단하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옆 여자 화장실
로 들어가 버릴 태세였다.

그만의 공간을 꿈꿨을 그놈에게 내가 어쩌면 이방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황당함에 대한 대가를 돌려주고 싶었다. 그리
고 의연히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
내아이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 야!! 이놈아!! 네가 문골 열어 ?岵?때 내가 여자였더라면
너 오늘 하루종일 실실거리며 기분 좋을 뻔했는데 참으로 안타깝
구나."

이렇게 말하고 나니 찝찝해하는 그 애의 붉은 얼굴이 떠올라 오
히려 내가 바람난 사람처럼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무더위로 육체는 검게 그을린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본능만이 의
미가 돼버린 상태다. 몸을 산뜻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커다란 도
전이다.

열려있는 현관문을 지나 슬리퍼를 걷어차듯 신고서 그곳으로 향
했다. 은빛 화장실 손잡이가 습기에 젖어 미끌거리는게 암컷의
양수막을 만졌을 때 느낌이 이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달린 하얀 버튼을 눌러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 백을 전등 주위로 칙칙한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볼일을
보면서 혼자 생각했다.

'더위와 습기로 내가 얼어 버렸구나'

손을 씻기 위해 우유빛 씽크대 위의 수도꼭지 물을 틀었다. 거울
을 보았다. 나 자신이고 싶지 않은 낯설은 얼굴이었다. 이 놈의
더위 때문이야 라는 생각이 미치는 순간 수돗물이 멈칫거리다가
퍽퍽거리며 급하게 쏴하며 물을 토해냈다. 몸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약간 몸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늘어진 육체의 반발
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거울을 보았다.

상쾌함이 육체까지는 전달되지 않은 듯 늘어져 있었다. 미끌거리
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순간 온 몸의 소름이 전기처럼 쫘~
악 퍼졌다. 내 머리위로 시커먼 물체가 흔들거린 것이다. 도저히
다음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7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귀신이 출
근했나 싶었다. 얼른 소주천 생각을 하며 발을 움직이자 요놈도
따라 똑같이 움직였다. 머리가 공포로 멍해졌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눈동자를 좌우로 돌리며 살펴보니 검은 고양이 일거라는 생
각이 들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검은 물체가 복도 불빛을 정면
으로 받자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 벽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방심할 수 없었다.

도장 출입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돌아서려는 순간 검회색 미지의
물체 다시 나타났다. 위협적이지 않은 기운이어서 이내 그 존재
를 알아 차렸다. 허탈함에 확인하고 싶어 몸을 움직여 머리를 불
빛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가 좌우로 돌려보았다. 그때마다 그림자
는 조소하듯 내게 응답하는 것 같았다.

" 이놈아, 너야. 너란 말이야. 무얼 두려워하느냐.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듯 나는 너의 마음의 거울이란다."
하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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