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도-석문호흡   admin | 개인정보취급방침

(주)조화로운 사람들
  [[갈무리 9호]] [이정철 수자] 아이의 미소 2005-03-10 15:56:25  
  이름 : 도화제      조회: 2860    
≪≪≪≪≪≪≪≪≪≪≪≪≪≪≪≪≪≪≪≪≪≪≪≪≪≪≪≪≪≪≪≪≪≪≪≪≪≪

*아이의 미소*

이정철 수자
≪≪≪≪≪≪≪≪≪≪≪≪≪≪≪≪≪≪≪≪≪≪≪≪≪≪≪≪≪≪≪≪≪≪≪≪≪≪


아름다웠다....!
수만개의 노오란 꼬마전구와 같은 개나리와 아이의 보조개처럼 옅은 보라로 물든
진달래는 어두운 그늘 사이로 비추던 수줍음을 밝고 환하게 만들었다.
햇살은 모든 만물에 겨울의 우울을 걷어내듯 수만가지의 파장으로 나뉘어져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따스함은 생명에게는 사랑이 되었다. 도시는 오랜만의 신의 축
복을 받은 듯이 전체가 가벼이 들떠있었다. 그런 봄날, 산행을 할 요량으로 집을 나
섰다.

매주 같은산 같은 길을 오르 내리는 일은 지루한 일상이 아닌 산으로부터 위로 받
고 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집을 나설 때 첫걸음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은 긴 보라매공원을 도보로 횡단하는 일이었다. 첫걸음이 힘든 것은 선택에 대
한 갈등의 고단함 때문이다. 즉 산행이냐? 도장이냐? 방바닥 긁적거리며, 다리떨면
서 책 볼 것인가?

그 다음은 보라매공원인데, 긴 거리를 횡단하는 동안 끊임없이 내가 혼자라는 사
실을 일깨우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 나를 잠시나마 불안하게 한다.



" 존재가 흔들린다.
온 대지 생명들의 요동 때문일까?
망각 속에 깊게 드리워진 맹아
존재는 그대로 머물고 싶어 하지만
추억처럼 세월의 흐름이 눈가에 부딪힌다.
눈가에 자리잡은 미세한 먼지
털어낸다는 일상의 행위로 멈춰진 낯설은 흔들림
무뚝뚝하게 다시 걷는다. "


토요일인 관계로 정문과 후문 운동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보라매 뒤쪽 산책
로는 인적이 드문드문했다. 커브길을 돌아 전나무 숲이 무성한 길을 들어섰다.
직선의 무료한 길이라 目測할겸 눈을 길게 뻗었다.

앞에서 희미한 두 점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더니 이내 화사한 옷차림을 한 두 모
녀가 있었다. 그들은 술래를 정해서 숨바꼭질을 하려는 참이었다. 아이는 5~6세 가
량 되어 보였다. 모녀의 사랑스런 따스함이 나의 굳었던 얼굴 근육에 훈훈함을 주
었다. 화창한 봄날 그들을 둘러싼 기운이 포근해서 나른할 정도였다.

처음술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사랑스런 딸의 뒤에 숨었다가 눈을 정겹게 가
리웠다하며 딸의 주위를 보호하듯이 맴돌았다. 쉬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는 행
복한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노오란 기운에 싸인 그들의 모습은 긴 겨울 내내 마굿
간 둥지에 웅크리고 있다가 생명 가득찬 햇볕을 쪼이러 나온 병아리 가족 같았다.

자연과 하늘과 엄마의 사랑의 품 속에서 아이의 모습은 더욱더 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음침한 전나무 뒤에 몸에 숨겼다. 눈을 감았다 뜬 소녀는 얼른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은 어느덧 어둠의 정령들이 칙칙한 전나무 숲을 배경으로
고개를 기웃기웃 거렸지만 따스한 대지의 여신이 얼른 그녀를 품에 안아 버렸다.
눈망울에는 눈물이 아른거렸다. 곧이어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보이자 다시 환하게
피어올랐다. 엄마는 연신 딸의 볼을 만지고 비벼주고 어르며 사랑의 변하지 않는
절대성을 확인 시켜주었다. 신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같았다.


" 그대가 그립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그 때
그 대를 그리며 맑은 순수함을 간직 했죠
떨리는 풀잎에도 고이 떨어지는 꽃잎에도
그대는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대가 그립습니다.
나에겐 또하나의 그대가 생겼습니다.
사랑스러웠지만 변덕스러웠죠
그를 향한 마음엔 갈증만 쌓여 답니다.
수많은 폐허를 가슴에 안기고
결국 내 곁을 떠났죠
어두운 밤 고독 속에서 그대를 찾아 떠났지만
에덴은 늘 저만큼 있었습니다.

그대가 그립습니다
망각의 깊은 그늘 허공을 가르며
나는 거울을 닦습니다. "

이번에는 반대로 엄마가 술래가 되었다. 소녀는 길가 도로 옆에 주차되어 있는 승
용차 뒤쪽에 얼른 몸을 숨겼다. 꼭꼭 숨었지만 바람은 아이의 흔적을 전해주엇다.

달이 거기에 있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무료해 보이자 얼른 놀래키며 아이
를 안아 주었다. 번쩍 들어 사랑을 확인시킨 후 바닥에 내려놓자 이번에는 가로수
옆 개나리 꽃밭으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숨는게 아니라 아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이를 찾는 엄마는 함께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하나의 그림이 되
었다. 그림에서 나온 아이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다시 숨을 곳을 찾아 앞으로 뛰
었다.

눈앞에 펼쳐진 도로에는 더 이상 자동차도, 나무도, 사람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
다. 텅빈 아스팥트에는 몸을 숨길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눈망울에는 커다란
슬픈 목련 꽃잎 같은 이슬이 맺혀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홀로 있었습니다. 홀로 문
제를 풀어내야 했습니다. 커다란 정적이 검회색 아스팔트만큼이나 어둡게 깔렸습니
다. 다음순간 어둠의 그림자가 그녀의 투명한 낯에 도달하기 전 엉뚱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러이 빙그레 한바퀴 돌더니 조개 같은 두 손을 두
눈에다 살포시 포개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분홍빛 미소가 번졌습니다. 조막 같
은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림으로써 소녀는 더 이상 외부의 숨을 곳을 어렵게 찾아다
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녀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뭔가를 훌쩍 뛰어 넘어버
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도 가벼운 진동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 변화에 놀라운
기쁨을 보여주듯 아른거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나는 아이
의 닫혀버린 상황을 불안스레 지켜보다가 선(禪)적인 해결에 산행 내내 미소가 사
라지지 않았다. 지혜는 세월에 따라서 온다고 하는 어느 시인의 말이 보통이다.

하지만 절대적 사랑 또는 우주적 파장과 투명한 아이의 절망적 상황과 같은 떨림
에서 나오는 지혜는 시간을 앞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그대 넘어선 이는 볼 것이며
존재하는 자는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닌
피안의 미세한 떨림을 느낄 것이다.
그 때 그대는
보이는 것을 볼 것이며 느끼는 것을 느낄 것이다. "

목록 이전글 다음글
 

서울 동작구 대방동 391-241 3층 도화제선학수련원( Tel : 02-821-0008)
Copyright © 도화제 . All rights reserved.